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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의 독서토론



이기준은 어느 대학생 독서토론에 참여했다.

그때 토론의 주제는 '정의(Justice)'에 대한 얘기였다. 토론에 거론된 책은 마이클 샌델이 지은 '정의란 무엇인가'와 공지영이 지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책과 관련해서는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할까?'라는 주제가 나왔다.



이기준은 자기가 말할 차례가 되어서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먼저 정의(Justice)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저는 사람에게 각자 자신만의 정의(Justice)를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의란 '이 세계는 어떠한 곳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겠다.' 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각자의 권리에 의해서 스스로 만들어진 정의가 사람마다 충돌할 수 있는데 이것을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내서 풀어가는 것이 정치이며 사회의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형제도에 대해서 저는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형제도라는 것은 '어떠한 일을 저지른 사람은 국가가 죽일 수 있다' 라는 개념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개념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모든 억압에 악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과거의 역사를 보면 유대인에 대한 사형, 개신교 혹은 카톨릭에 대한 사형 등 믿는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형이 있고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에 대한 사형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상대를 사형시키는 것은 제가 위에 설명한 정치와 사회의 기능을 발전시키는 것을 막습니다.
왜냐하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 대화와 토론, 합의를 거쳐서 문제를 해결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악으로 몰아서, 상대를 죽여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형제도의 근거가 되는 이 개념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고 괴롭히는 데 사용됩니다. 이 개념의 확장판은 예를 들어서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장애인이기 때문에, 나이든 노인이기 때문에 사회에서 몰아내고 괴롭히고 죽여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충실하게 확장한 사회가 바로 2차대전 독일의 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반정부인사,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장애인, 집시 등 나치 당이 원하지 않는 모든 구성원을 사형시켰습니다."

이기준의 이 발언에 대해서 몇몇 학생들이 반론을 제기했다.
K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니는 K군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이기준님은 Definition(정의定義. 사물의 뜻과 관계를 만든다는 뜻.)과 Justice(정의正義. 올바른 도리. 우리말에서는 Definition과 동음이의어)를 혼동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보편적인 정의(Justice)는 시대를 초월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2차대전 때의 독일 나치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들은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을 예외로 두고 강간이나 살인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사형을 내리는 것은 합당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기준님은 사형제도의 개념이 모든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박해하는데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21세기의 대한민국 사회가 그 정도 분별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한국사회가 2차대전 때의 나치와 같은 실수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범죄자를 사형하는 것과 나치의 유태인 등 탄압은 다른 것입니다. 이기준님은 비약이 너무 심하신 것 같습니다."

이기준은 미소지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혼동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말한 주장의 요지는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Justice를 Definition할 권리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K님은 경제학과를 다니고 있으니  장 자크 루소, 존 로크 등의 자유주의와 사회계약설에 대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자유주의의 근간은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살아갈 방법,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방법을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권자 개념입니다. 어느 사람이든 자신이 생각하는 Justice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 Definition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사회의 다수 의견과 차이가 나서 갈등을 겪을 수는 있습니다."

이기준의 이 말이 있고 나서 K군을 비롯한 다른 학생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그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1) 자유주의라는 사상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상일 뿐 엄연한 현실은 사회가 있고 사법부가 있고 경찰이 있고 교도소가 있지 않느냐?
2)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정의(Justice)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냐?
3) 살인, 강간과 같은 중범죄자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있을 때 범죄자를 사형시키지 않고 몇 년 수감시킨 것만으로 풀어주면 되겠느냐? 피해자가 입은 피해는 어떻게 보상하느냐?

이기준은 이중 3)번에 대해서만 이렇게 대답했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과 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보상하는 것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강간, 살인 등의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려면 국가가 피해자 측에게 심리상담, 경제적 보조금 지원 등을 보강해서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 자리에는 이기준의 동생 이기환도 있었다. 이기환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분들이 이기준님에게 말하는 반론을 들어 보면 많은 분들이 보편적인 정의(Justice)라는 것이 외부에 이미 정해져 있다, 사회, 정부, 사법기관 등이 외부에 이미 정해져서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창조의 산물입니다. 법원, 경찰, 교도소 등도 사람들이 모여서 합의를 해서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것은 실시간으로 계속 만들어지고 재조립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가 샤르트르가 한 말 중에 '나는 프랑스라는 사회에 종속된 구성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하나의 프랑스다. 5천만 명의 프랑스 국민이 있다면 5천만 개의 프랑스가 있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누구나 자신의 세계를 창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예를 들어보면 어떨까요? 최근 태평양의 어떤 무인도를 사들인 사람이 1인 국가를 선포했습니다. 이 사람에게 사회나 정부 기관은 외부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만드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실존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 사회를 만드는 경험을 해보지 못하고 기성세대가 이미 만들어 놓은 사회 기관에 통제받는 데 익숙하다 보니 주권자로서 권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은 점차 흥분해서 이기준과 이기환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특히 K대학교를 다니는 K군과 S대학교를 다니는 S양이 주축이 되어서 비아냥거렸다.
"부분과 전체를 혼동해서 비약을 너무 심하게 하시는군요"
"혹시 자유주의, 사회계약설에 대해서 제대로 된 저서를 읽어보시기나 했나요?"
"실존주의는 사회에 대해서 개인이 느끼는 무기력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가요?"
"저희 과 교수님이 이 부분에 대해서 대단히 저명하신 분인데 이기준님이나 이기환님이 얘기하신 그 부분을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거든요?"
"이기준님과 이기환님이 주장하는 이런 내용은 대체 어디서 배우신 거죠?"
"이기준님 이기환님은 학교를 어디 다니세요? 무슨 과를 다니세요? 이 문제에 대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있나요?"

이기준은 생각했다.
이렇게 저급할 수가 있나. 사회의 미래인 젊은 학생들이 이렇게 갇혀있는 답답한 생각을 하다니. 자신을 억압하는 사회에 동조하다니.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창의성이 없다.
이기준은 그날 무척 화가 많이 났다. 그리고 그는 우울해졌다. 그는 그후 다시는 그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이기준은 그때는 답답하고 우울했지만 그 대학생들이 자신에게 잘못해서 그런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스스로가 가진 사고방식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이기준은 그들과 부딧쳐서 논쟁하는 것을 그만두고 조용히 자신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다. K군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공기업에 취업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고 S양은 대학원에 들어가서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밟았다. 갈수록 취업이 어려워져서 그들은 불만이 쌓였다.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때문에 그들은 화가 났다. 그들에게는 이 세상이 정의롭지 않은 잘못된 세상이었다.

그후로도 시간이 흘러 10년이 지났다. 이기준은 그동안 몇 개의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사업을 하고, 거기서 얻은 잉여 수익으로 장애인과 고아를 돕는 활동을 했다.

이기준에게 정의란 자신이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었거나 특별한 행운이 주어져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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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기준이에요.  저는 Deduction Theory, LLC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CEO로 일하고 있어요.
저는 제 동생 이기환님과 함께 일을 하구요. 연구와 공부도 하고 있어요. 우리가 연구하는 주제는 논리학, 수학, 과학, 그리고 컴퓨터 정보공학이에요. 이 블로그는 우리가 연구하고 공부하는 주제를 설명하는 곳이에요.
그리고 저는 최근 오픈소스 공개 스터디 릴랏 프로젝트의 내용을 번역해 주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어요. 제 생각에는 이 프로젝트가 전세계에 사는 어린이, 학생, 어른에게 도움이 될 거에요. 특히 저소득층에게요. 이 프로젝트는 무료에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기획했어요. 저는 나중에 저소득 국가에 학교와 고아원을 짓고 사람들에게 이 프로젝트 방식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쳐 주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나중에 그 사람들이 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아래에 링크한 릴랏 소개 페이지를 읽어 본 다음 이것이 도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시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오픈소스 공개 스터디 프로젝트 Rellat을 소개합니다
원문 컨텐츠는 한글로 전부 제가 쓴 것이에요. 우리는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님과 함께 Rellat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기환입니다.
제가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 어도비 플래시 프로그램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다가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액션스크립트를 사용한 것입니다.
Rellat 프로젝트의 방법론은 제가 평소에 일을 하는 방법과 같습니다.
저는 사실 500줄 이상 넘어가는 코드를 보면 정신이 없고 잘 기억도 안됩니다. 지금도 간단한 코드 문법이 기억이 안나서 구글을 뒤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신 저는 이 코드가 어떤 사고방식을 사용해서 만들어졌는지, 어떤 관계정보를 사용했는지를 추적합니다. 이것이 연역론의 코딩 방법론, 코딩 스타일, 컴퓨팅 세계관입니다.
이 사고방식을 갖추면 더 나은 정보처리 방식이 무엇인지 비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프로그래밍의 본질이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나머지 프로그램의 빈공간은 구글과 스택오버플로우의 힘을 빌려서 채워넣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그렇게 하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기술, 수만 줄의 코드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면서 대규모의 질 높은 정보처리를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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