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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는 착각


마크

1990년대 마크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는 가끔씩 아버지의 개인 사무실에 가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의 아버지 에드는 개업 치과의사였다.



에드의 사무실에는 개인용 컴퓨터가 있었다. 에드는 마크에게 틈틈이 컴퓨터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마크는 아버지와 함께 컴퓨터로 소프트웨어라는 무엇인가를 만드는 활동을 좋아했다. 1993년 최초의 웹 브라우저가 출시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마크는 웹 브라우저를 사용해서 접속이 가능한 홈페이지 제작에 몰두했다. 마크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아버지의 것을 만들고, 다른 가족의 것을 만들다.

당시의 홈페이지라는 것은 페이지가 달랑 한 개인 것으로 거기에 그 사람의 사진, 자기소개, 남기고 싶은 문구 등을 넣은 것이 전부였다. 그 한 장짜리 홈페이지에서 마크가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홈페이지 주인이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링크였다. 초등학생 마크는 사람들을 만나면 한 번씩 인사처럼 이렇게 물어보았다. "혹시 홈페이지 있으세요? 제가 홈페이지가 있는데 링크를 교환하지 않으시겠어요?"

마크는 큰 종이 위에다 누구의 페이지가 다른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다이어그램 그리기를 해보았다. 한 홈페이지는 보통 10명 정도의 다른 사람들과의 링크를 가지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홈페이지를 블럭으로 만들고 그것을 선으로 연결하니 복잡한 거미줄 네트워크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 중에 가장 많은 거미줄을 가진 사람이 마크였다.


마크는 생각했다.
"이렇게 서로의 홈페이지를 찾아내고 링크를 교환해 주는 일을 소프트웨어가 자동으로 해준다면 참 좋겠다. 거기에 추가해서 이웃이 된 홈페이지에 업데이트 된 내용을 실시간으로 다른 이웃들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크는 이렇게 다른 사람의 홈페이지를 찾아내고 링크와 소식을 실시간으로 교환하는 일을 관계정보로 정의했다. 그가 이렇게 공학적인 관계정보를 정의하고 나니 그것을 사용해서 또 다른 관계정보인 인문학적인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를테면 링크를 서로 교환하는 것은 서로가 관심을 표현하는 일이 되고 이런 관심을 나타내는 활동으로 사람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사회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크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 후로 시간이 흘렀다.
인터넷은 2000년을 전후로 크게 발전해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수천만 명이나 되고 이메일을 사용하고 홈페이지를 가지는 일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마크는 대학생이 되었다.
마크는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우연히 자신이 어린 시절에 창조했던 아이디어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크는 자신이 초등학교 때 생각했던 그 관계정보를 그대로 재조립해서 사람들의 페이지를 만들어 주고 그것을 자동으로 연결해 주고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이웃의 업데이트 정보를 알 수 있게 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그렇게 페이스북이라는 서비스가 탄생했다.


래리와 세르게이

래리와 세르게이는 대학 박사과정 동기였다.

그들은 박사과정 프로젝트로 '사람들이 신뢰하는 정보를 선별하는 알고리즘'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것은 마치 생물계에서 자연선택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 많은 정보가 있을 때, 그 중에는 사람들이 더욱 믿을 만하다고 판단하여 선택하는 패턴이 있으며 그 패턴을 시스템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면서 정보를 선별하면 사람들에게 더 나은 정보를 더 빠르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정보의 신뢰성을 정의하는 관계정보를 만들어 냈다.


래리와 세르게이는 사람들이 웹 페이지에서 머무르는 시간의 정도, 어디에 어떤 클릭을 하는지, 웹 페이지에서 언급되는 단어와 전체 글의 상관관계, 한 번 찾아왔던 사람이 또 다시 찾아오는 정도 등을 종합해서 웹 페이지의 점수를 매겼다. 그리고 그 순위를 인덱스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이 검색을 했을 때 순위별로 재조립해서 보여주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순위매김이 절대적인 것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사용자들의 실시간 선택을 반영해서 조정되게 했다. 그들은 이 기술에 "페이지 랭크"라는 이름을 붙이고 특허를 신청한 다음 차고에서 인터넷 검색 서비스 회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구글이라는 서비스가 탄생했다.


고등학생인 빌은 1970년대 그때 막 나온 개인용 소형 컴퓨터 조립키트에 흥분했다.
그는 그 전까지는 학교에 도입된 대형 컴퓨터에서 베이직 프로그래밍을 하는데 빠져 있었다.

그는 소프트웨어인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서 값비싼 대형 컴퓨터가 중요한 일을 할 수도 있고 그저 아무 쓸모 없이 장식장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 대학교에서 연구용으로 도입한 대형 컴퓨터 머신이 고등학생인 빌과 친구들이 가서 프로그램을 설치하기 전까지는 소프트웨어 담당자가 없다는 이유로 먼지 쌓인 채로 방치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프트웨어와 컴퓨터 하드웨어의 관계에 대해서 깨달은 빌에게 개인용 소형 컴퓨터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빌에게 개인용 소형 컴퓨터는 소프트웨어만 제대로 설치하면 학교에 있던 대형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빌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사용해서 일을 하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그 세상에서 자신은 사람들이 '어떻게' 컴퓨터를 사용해서 일을 할지 그 관계정보를 만들어 내서 정하는 사람이었다.

빌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대한 생각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는 대학을 그만두고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들었다. 빌의 부모님은 그가 어릴 때부터 그랬듯이 그를 지지해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한 자선기부 파티에서 만난 IBM 임원에게 자기 아들이 새롭게 시작한 소프트웨어 사업을 소개했다.

유명 컴퓨터 회사였던 IBM은 마침 개인용 컴퓨터 사업부를 계획하던 중이었고 IBM 개인용 컴퓨터에서 사용할 운영체제 소프트웨어를 찾고 있었다. 빌은 조립용 개인 컴퓨터 키트에서 동작하는 DOS 운영체제 판권을 구입해서 IBM 컴퓨터에서 동작하도록 수정하고 자신의 회사 것으로 새롭게 마킹한 다음 IBM에 납품했다.

그것이 마이크로 소프트의 시작이었다.



스티브

스티브는 대학을 중퇴했다.
그는 한동안 이런 저런 수업을 청강하면서 무료 급식소를 전전하기도 하고 훌쩍 인도로 반 년 동안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입양아였다. 입양아들이 자주 겪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스티브도 겪었다.
"나는 왜 여기에 이렇게 있는 걸까?"
"나는 혹시 하자가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의 생부모는 나를 버린 것이 아닐까?"
"나는 사실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아니야, 나는 특별한 사람이야. 나는 하자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과 다른 특별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이런 혼란과 자기파괴적인 생각에 대한 반발심으로 스티브는 끊임없이 자신의 의미를 찾아서 헤메야 했다. 그는 자신에게 남들과 다른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고 그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스티브의 뛰어난 점은 자기 스스로 특별한 가치가 무엇인지 질문을 하고 그것의 관계정보를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에 있다. 스티브도 빌과 같이 개인용 컴퓨터 키트가 출연했을 때 깜짝 놀랐다. 그는 친구 워즈니악을 꾀어내서 개인용 컴퓨터 조립 키트를 납품해서 팔았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만드는 컴퓨터가 다른 컴퓨터와 달라야 하는 이유, 그 관계정보를 만들었다.

그의 컴퓨터는 개인 컴퓨터 최초로 글자에 아름다운 폰트를 가졌다. 그리고 터미널에 코드만 타이핑하는 화면이 아니라 화면에 윈도우 창을 띄우고 마우스 포인터로 조작하는 인터페이스를 최초로 도입했다. 그 기술은 다른 회사의 연구소에서 개발되었지만 그것을 개인용 컴퓨터에 재조립해서 구현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개인용 컴퓨터에서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관계정보인 의미를 그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렇게 애플 컴퓨터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는 착각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이미 발견되고, 이미 개발되고, 이미 발명되고, 이미 정해져서, 이미 고정되어 있다는 착각이 있다.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원래부터 그런 것이라는 착각이 있다. 그것이 바로 결과정보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런 새로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다.

최고 수준의 대학교에 입학한 수재들이 이렇게 말한다.
"이미 과거에 많은 천재들이 출현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발명해놓았기 때문에 우리 세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다."
"과거 세대는 우리보다 쉽게 기회를 얻은 것 같다. 그때는 경쟁도 지금보다 덜하고 사람들이 정보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조금만 뛰어나면 크게 성공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다들 어느 정도는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다."
"과거 세대가 이루어 놓은 업적을 보면 그들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없을 것 같아서 위축된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착각이다.
안타깝지만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새로운 창조를 할 수 없다.

성공한 천재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위축되고, 위안하고, 낙담하는 사람들은 모두 결과정보에 집착하고 있다. 천재들이 이루어 놓은 명예와 업적, 천재들이 이루어 놓은 경제적인 성공, 이런 결과정보가 사람들의 눈을 가로막고 새로운 창조를 못하게 한다.

그러나 이 세상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성공한 천재들은 관계정보에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을 찾고 만들어 내는 일을 꾸준히 했을 뿐이다.  

그들은 이 세상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고 그 '왜'를 스스로 찾아 내고 만들어 낸다.
'어떻게' 그런지 생각해보고 그 '어떻게'를 스스로 찾아 내고 만들어 낸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 생각해보고 그 방법을 스스로 찾아 내고 만들어 낸다.

이 왜와 어떻게가 관계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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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기준이에요.  저는 Deduction Theory, LLC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CEO로 일하고 있어요.
저는 제 동생 이기환님과 함께 일을 하구요. 연구와 공부도 하고 있어요. 우리가 연구하는 주제는 논리학, 수학, 과학, 그리고 컴퓨터 정보공학이에요. 이 블로그는 우리가 연구하고 공부하는 주제를 설명하는 곳이에요.
그리고 저는 최근 오픈소스 공개 스터디 릴랏 프로젝트의 내용을 번역해 주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어요. 제 생각에는 이 프로젝트가 전세계에 사는 어린이, 학생, 어른에게 도움이 될 거에요. 특히 저소득층에게요. 이 프로젝트는 무료에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기획했어요. 저는 나중에 저소득 국가에 학교와 고아원을 짓고 사람들에게 이 프로젝트 방식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쳐 주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나중에 그 사람들이 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아래에 링크한 릴랏 소개 페이지를 읽어 본 다음 이것이 도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시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오픈소스 공개 스터디 프로젝트 Rellat을 소개합니다
원문 컨텐츠는 한글로 전부 제가 쓴 것이에요. 우리는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님과 함께 Rellat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기환입니다.
제가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 어도비 플래시 프로그램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다가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액션스크립트를 사용한 것입니다.
Rellat 프로젝트의 방법론은 제가 평소에 일을 하는 방법과 같습니다.
저는 사실 500줄 이상 넘어가는 코드를 보면 정신이 없고 잘 기억도 안됩니다. 지금도 간단한 코드 문법이 기억이 안나서 구글을 뒤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신 저는 이 코드가 어떤 사고방식을 사용해서 만들어졌는지, 어떤 관계정보를 사용했는지를 추적합니다. 이것이 연역론의 코딩 방법론, 코딩 스타일, 컴퓨팅 세계관입니다.
이 사고방식을 갖추면 더 나은 정보처리 방식이 무엇인지 비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프로그래밍의 본질이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나머지 프로그램의 빈공간은 구글과 스택오버플로우의 힘을 빌려서 채워넣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그렇게 하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기술, 수만 줄의 코드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면서 대규모의 질 높은 정보처리를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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