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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 그리스인 역설의 해제


이 글은 2014년 10월 18일 처음 작성한 글입니다.

철학계에는 유명한 역설, 모순, Paradox가 있습니다. 이 역설들 때문에 현대 논리학에서는 그때까지 개발된 논리에 중대한 헛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정보처리를 하다가 이 역설에 해당하는 패턴에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 정보처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1인지 0인지, Yes인지 No인지, 맞는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철학계에서 역설로 알려진 이야기를 참고해서 그 속에서 논리가 가진 근본적인 헛점, 오류를 찾아내고 이 오류들 때문에 재래식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수학, 과학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최초로 주장한 학자가 바로 버트런드 러셀입니다.

로지코믹스라는 책을 보면 버트런드 러셀의 생애를 간략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읽어 보았습니다.

연역론에서는 이 역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특별한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미 존재는 허상이다 글에서 유명한 역설 중에 하나인 "테세우스의 배 역설"을 연역론으로 풀이했습니다. 연역론으로 풀이했다는 말은 역설을 풀어서 더 이상 역설이 아니게 만들었다, 왜 역설이 일어나는지 증명하고 역설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즉 역설을 해제했다는 말입니다.

저는 연역론을 사용해서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저는 역설에 봉착하게 된 사람들이 시작과 끝이 있는 한정된 사건을 부르는 이름을 만든 다음 링크 형식으로 그 이름과 사물을 연결지어서 존재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는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존재에 이름을 붙이는 활동은 사건과 일치하지 않으며, 실존하지 않음을 증명했습니다.

그러므로 테세우스가 배를 타고 어떤 일을 해서 관련된 사건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나 테세우스의 배라는 것은 고정되어서 실존하지 않으며, 테세우스의 사건이 끝난 이후에 테세우스의 배는 테세우스가 탔었던 배가 되고 사건과는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분리된 사건과 사물의 정보를 가상으로 잇는 인간의 존재규정적인 생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봅니다.


테세우스의 배 역설을 연역론으로 풀이, 역설해제

테세우스의 배 또다시 등장

재래식 테세우스의 배 역설 내용

플로타코스 서사시에 나오는 테세우스가 영웅적인 행적을 하면서 타고 다닌 테세우스의 배가 있다. 테세우스 - 위키백과
시간이 흐른 뒤 배가 낡아서 사람들이 낡아서 썩은 나무판자를 뜯어내고 새 나무판자로 교체하는 수리를 했다. 이렇게 새로운 나무판자로 교체를 하면 테세우스의 배는 과연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얼마나 교체하면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게 되는가? 만약 모든 판자, 모든 장식을 새 것으로 바꾸면 이것은 그래도 테세우스의 배인가?

연역론의 역설해제

  1. 00년 00월 00일에 테세우스가 배를 타고 어떤 영웅적인 일을 했다.
    1. 00년 00월 00일 테세우스가 탔던 배가 있다.
    2. 테세우스가 했던 일은 00년 00월 00일에 시작해서 xx년 xx일 xx시에 끝났다.
    3. 이 배는 테세우스가 00년 00월 00일에 탔던 배는 맞지만 더 이상 테세우스의 배는 아니다.
  2. 또 다른 관점으로 테세우스가 소유한 배인지, 다른 사람이 소유한 배인지에 대한 소유권을 전제로 한 "테세우스의 배"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3. 그러나 테세우스의 사건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테세우스 사건을 근거로 했다면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는 없다.
  4. 만약 테세우스의 사건이 종료되지 않고 테세우스가 계속 이 배를 사용하고 있다면 사건이 실시간으로 지속되기 때문에 "테세우스의 배"라는 명제는 성립할 수도 있다.

“썩은 나무판자를 새 나무판자로 교체하면 이 배는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이 바로 역설을 유발하는 질문이다. 이 역설 질문을 아래와 같이 재조립해서 제시해 본다.
“만약 테세우스가 영웅적인 사건을 진행하는 도중에 배가 파손되어서 파손된 나무판자를 새 나무판자로 교체했다. 이 경우 이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의 답은 "그렇다.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이다."이다. 이렇게 위의 역설 질문을 재조립해서 제시하는 순간, 즉시 역설이 논파된다. 배의 나무판자라는 물질이 테세우스의 배를 정의하는 인과의 원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테세우스의 배가 왜 테세우스의 배인지 두 개의 문장, 두 개의 질문 사이에서 정보비대칭성을 추론해서 그 이면의 정보구조체를 드러냈다. 이렇게 해서 테세우스의 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배의 물질이 아니라 테세우스의 사건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테세우스의 배의 정체성, Identity에 영향을 주는 본질적인 두 가지 관계정보는 이렇다.
  1. 테세우스가 00년 00월 00일에 이 배를 타고 시작한 그 영웅적인 사건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지 여부, 즉 사건의 관계정보
  2. 배의 소유주가 누군지 여부, 즉 소유권의 관계정보

그러므로 테세우스의 배 나무판자를 새로 바꿔치기해서 수리를 하던지 말던지 그것은 테세우스의 배의 정체성, identity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것은 사건이나 소유권과 분리되어 있는 배의 물질이라는 결과정보를 근거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즉 결과정보의 오류다.

재래식 명제에서 역설이 일어났던 이유

사람들은 사건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나는 이벤트라는 것을 잊고 그 사건이 인과 없이 무한정 지속된다고 착각한다. 테세우스가 그 배를 타고 지금까지 계속 사건을 지속하고 있다면 사건의 관점에서 여전히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가 된다. 그러나 테세우스의 사건은 끝났다. 만약 사건이 종료했더라도 테세우스가 그 배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배는 테세우스의 배가 된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죽었다. 소유권은 소멸된다. 죽은 테세우스는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 사건과 관계에 대한 인식이 모호하기 때문에 모호한 사건과 물질적인 배를 연결하려는 특수한 가상 인과관계를 만들어 낸다. 이것이 존재규정이다. 존재규정을 해서 인간은 정의하지 않은 모호한 사건과 물질인 배를 연결해서 테세우스의 배라고 이름지어 부르고 인식한다. 그것이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역설이라는 특이한 오류현상이 생기는 원인이다.


연역론과 과거 학설들의 차이점

연역론에서는 연역론 이전까지 주장된 논리학을 재래식 논리학이라고 부르고 재래식 논리학에서 영향을 받은 모든 학문들을 재래식 학문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역설을 풀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에 설명한 것처럼 이 역설 때문에 기존 재래식 논리학과 그 이하에서 만들어진 모든 학문들이 오류가 생겼습니다. 이 역설을 풀이해서 새로운 관계정보를 만들면 재래식 논리학의 오류를 개선하고 그 이하의 모든 학문의 오류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오늘은 유명한 역설 중 하나인 거짓말쟁이 그리스인 역설을 풀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사실 몇 년 전에 이런 역설들을 이미 수십 개 풀이해 놓았습니다. 제가 시간이 한참 지나서 이것을 한 개씩 언급하는 이유는 칼럼을 수십 편 써서 먼저 개념을 쉽게 설명해 준 다음에 풀이를 해서 개념과 풀이가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역설 하나를 풀이하는데 지금까지 제가 쓴 연역론 칼럼의 내용을 총동원 해야 합니다. 저는 칼럼을 한 편씩 쓰면서 최대한 사람들을 쉽게 가르치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최근에 쓴 계획한 대로 인생을 살아가려면 칼럼을 쓰면서 저는 제 자녀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라고 가정하고 그 아이에게 연역론 명상법을 설명하자는 입장으로 썼습니다.


계획한 대로 인생을 살아가려면 글은 ‘내 자녀가 지금 8살, 9살이라면 연역론 명상법을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할까.’하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글입니다. 저는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저의 내적환경을 자녀들에게 전수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있어서 제 가족, 제 자녀를 가르쳐서 더 나은 내적환경을 전수하는 것과 생면부지인 남을 교육해서 더 나은 내적환경을 전수하는 것은 별도의 다른 일이 아닙니다. 내적환경을 전수한다는 관점에서 똑같은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족을 교육할 때에는 정성을 들이고 남들을 교육할 때는 성의 없이 대충 하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두 가지 일이 같은 일입니다. 저는 칼럼을 쓰고 댓글을 쓸 때 이런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연역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저와 같은 입장에서 더 나은 내적환경을 개발하려는 마음가짐으로 배우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존재규정을 깨닫지 못하고 존재규정을 옹호하고 부, 명예, 허세 등 허황된 욕구와 감정 충족을 하는 도구로 연역론을 사용하려고 하는 사람은 사양합니다. 저는 저와 입장이 다른 사람을 사양할 권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연역론을 창조했고 제가 최선을 다해서 차별 없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쟁이 그리스인 역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은 다음과 같은 추론에 따라 모순에 봉착한다.

1. 에피메니데스는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
2. 그의 주장이 맞다고 전제한다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이다.
3. 그런데 에피메니데스는 크레타인이다.
4. 고로 에피메니데스는 거짓말쟁이다.
5. 거짓말쟁이의 말은 거짓말이므로, 에피메니데스의 말은 거짓말이다.
6. 에피메니데스의 말이 거짓말이므로,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위의 추론에서, 2번 항목과 6번 항목은 서로 모순된 내용을 갖지만, 두 항목 모두 올바른 추론에 따라 나온 결과이다.

연역론을 배워서 깊이 연구한 사람은 이 명제가 제시되자마자 바로 존재규정임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생각을 해봅시다. 거짓말은 왜 거짓말입니까? 거짓말쟁이를 논하기 한참 전에 거짓말이 뭔지 논해봅시다. 거짓말이 왜 거짓말입니까?

거짓말은 왜 거짓말이 되는가?

거짓말이 거짓말이 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거짓말은 뒤에 한 진술이나 행위가 앞에 한 진술이나 행위에 반대될 때 만들어진다.

‘뒤에 한 진술이나 행위가 앞에 한 진술이나 행위에 반대되는 패턴’, 이것이 거짓말의 관계정보이다. 이 관계정보에 의해서 만들어진 모든 진술이나 행동은 거짓말이 된다.

아주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인류역사가 수천 년이나 되고 각종 과학이 고도로 발달할 때까지 거짓말이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제대로 정리를 안 해놓았습니다. 그걸 연역론에서 이제서야 한 것입니다. 한 번 사전에는 뭐라고 해놓았는지 봅시다.  

거짓말[거ː진말] [명사]
1.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말을 함. 또는 그런 말.
2. 전과는 아주 딴판임.

사전적 정의와 연역론의 정의가 무엇이 다른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말을 한다는 것은 거짓말의 정의가 되기에 부적합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신이 가진 감각, 내적환경으로 각자 다른 정보를 입수하고 저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주관적인 정보처리를 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실과 다른 진술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짓말이라고 부르면 안됩니다. 주관적인 진술은 그냥 주관적인 진술입니다. 주관적인 진술을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면 상대적인 관점의 차이를 절대적인 오류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주관적인 진술을 주관적인 진술이라고 알고 있으면 절대 오류가 아닙니다. 이것은 관찰자의 관점을 인정하는 겸허한 태도입니다. 관찰자의 주관적인 진술이 객관적인 사실인 것으로 착각하면 ‘성급한 객관화’가 되고 그때부터 오류가 성립됩니다.  

둘째, 전과 딴판이다, 전과는 다른 진술을 한다는 것은 겉으로만 보면 연역론의 거짓말 정의와 닮았지만 중요한 부분을 빼먹었기 때문에 역시 부적합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결과정보나 표현이 달라진 것으로 거짓말을 판별하면 안되고 앞에 한 진술을 논리상 뒤짚어 엎는 반대되는 주장이 나와야 거짓말입니다. 진술에서 논리적인 방향 충돌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술의 결과정보가 전과 달라진 것으로는 거짓말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거짓말쟁이가 성립하는지 여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합시다.

연역론에서는 거짓말쟁이라는 말이 어떻게 성립하는가?

만약 거짓말쟁이라는 말이 ‘00년 00월 00일 00시에 거짓말을 했던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라면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에피메니데스의 역설 내용을 보면 거짓말쟁이라는 말이 ‘이전부터 거짓말을 해왔고 앞으로도 무한정 거짓말을 할 사람’이라고 전제되어 있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 거짓말쟁이에 대한 정의가 언급된 적 없는데 어떻게 아냐고? 연역론에 이것을 추론하는 방법이 있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 내용에 나오는 문장 두 개만 재조립 해보면 정보비대칭성을 추론해서 바로 알 수 있다.

만약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 나온 거짓말쟁이가 ‘00년 00월 00일 00시에 거짓말을 했던 사람’이라는 사건에 한정된 단어라면 이후에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할지, 말지 알 수 없다. 거짓말쟁이라는 단어가 과거 사건을 지칭하는 한정된 의미가 되면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그러므로 에피메니데스의 역설 명제 자체가 더 이상 진행이 안되고 첫 문장에서부터 불성립 하게 된다.

그러므로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 나오는 거짓말쟁이라는 단어는 테세우스의 배 역설에서와 동일하게 ‘시간의 흐름을 모호하게 만들어서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무한정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다. 이것은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나는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 나온 거짓말쟁이가 무슨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증명했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을 연역론으로 풀이, 역설해제

위에 테세우스의 배 역설에서 증명한 것처럼 시간의 흐름, 사건에 대한 정의 없이 이렇게 거짓말쟁이를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무한정하게 정의한 것이 이미 존재규정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존재규정인 것이다.

이렇게 첫 번째 전제부터 존재규정임을 증명했을 때 사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은 논파되어 해제된다. 그러나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는 존재규정 오류가 한 개 더 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좀 더 진행해 본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는 이렇다.
과거에서 미래까지 무한정 거짓말을 하는 크레타인 거짓말쟁이가 자신까지 포함해서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 말이 ‘거짓말쟁이가 자신이 거짓말쟁이라는 참말을 하는 것’이 되어서 모순이 되고 역설이 발생한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연역론으로 풀이하면 그렇지 않다.
먼저 거짓말은 앞에 한 진술이나 행동이 뒤에한 진술이나 행동에 의해서 반대되거나 충돌할 때에 성립하는 현상이다.

그것은 연역론에서 정의한 연역론의 주관적인 거짓말 정의이지 않냐고?  
그런데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서는 아예 거짓말에 대한 정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는 주관적인 거짓말에 대한 정의조차 없는 것이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서는 앞의 진술이나 뒤의 진술이라는 시간적 인과관계 없이 언제나, 무슨 말이든 거짓말을 하는 거짓말쟁이가 등장한다. 거짓말에 대한 관계정보 정의가 없고 거짓말이라는 결과정보만 있는 것이다. 거짓말에 대한 그 어떠한 전제도, 정의도 없기 때문에 거짓말이라는 행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점의 전제 없는 선, 선의 전제 없는 면처럼 공허한 진술인 것이다.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는 거짓말이 만들어지는 전제, 정의가 없다. 거짓말인 현상만이 있고 그 거짓말을 하는 존재만 있다. 그러므로 실존하지 않는 진술이 된다. 논리전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역설이 불성립한다.

보다 쉽게 말해서 에피메니데스의 역설 세계관에서는 거짓말이 무엇인지 증명할 수도 없고, 무엇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다. 무엇이 거짓말인지 주장할 수도 없는데 무슨 수로 거짓말쟁이라는 개념을 만들 수 있나? 에피메니데스의 역설 세계관에서 거짓말이라는 것이 이름만 있을 뿐 실체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거짓말쟁이도 실체가 없다. 개념이 성립하지 않기 떄문에 진술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 성립하기 한참 전에 진술이 논리적으로 자체붕괴하게 된다. 그래서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은 역설이 아니다. 역설해제된다. 간단히 정리 해본다.

  1.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는 거짓말이 만들어지는 인과관계의 정의가 없다. 쉽게 말해서 왜 거짓말쟁이인지, 어떻게 거짓말인지 전제가 없다. 그래서 이 이야기 내부에서 거짓말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한다는 진술도, 거짓말쟁이가 있다는 진술도 성립되지 않는다.
  2.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는 거짓말쟁이가 인과관계의 사건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무한정 거짓말을 하는 존재로 제시된다. 시간의 흐름을 전제하지 않은 오류다.

참고로 2번에 해당하는 존재규정이 매우 저급한 존재규정이고 각종 인종차별, 인권유린의 원인이 된다. 인간은 살면서 이 존재규정을 깨닫고 해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각종 역설을 풀이하고 해제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들

이런 각종 역설을 풀이하고 해제하는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인간이 가진 사고방식이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편협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1. 인간이 시간의 흐름에서 인과관계를 정의하는 능력이 대단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의 흐름,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인간이 서로 다른 정보를 가상의 상상력으로 짜깁기를 해서 연결하는 사고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겉으로 보이는 물질, 겉으로 보이는 사람, 사물 등의 결과정보를 인과의 근거로 해서 논지를 전개하는 생각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결과정보를 인과의 원인으로 삼는 사고방식, 존재규정 사고방식이 인간을 역설, 오류에 휘말리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재래식 논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수학, 과학, 각종 학문들 또한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학자들은 이 헛점, 오류 부분을 봉인하고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회피합니다.


인류 문명의 역사 5천년?

인간이 최초에 지구에 출현한 것은 300만여년 전, 석기 등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수십만 년 전, 4대 문명 등 문명사회를 이루어서 과학과 기술을 연구한 것은 5천년 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위에 해제한 역설은 그 역사가 인류 문명의 역사와 거의 같습니다. 저 역설 개념들이 인류 역사에서 처음 등장하고 나서 아직 한 번도 풀린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글 서두에 언급한 버트런드 러셀은 각종 역설 명제가 보여주는 논리의 오류 때문에 그 논리를 근거로 한 이하의 모든 학문들도 같은 오류 문제를 겪는다는 것을 증명한 학자입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논리학의 역설과 모순이 하부의 다른 학문에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알아낸 학자고 역설을 해제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 역설의 해제를 제가 했습니다. 제가 풀이하고 제가 해제했습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연구해 왔었고 오늘 칼럼을 써서 증명했습니다. 오늘 이 칼럼을 하나 쓰려고 제가 쉬운 말로 관계정보 개념을 정리해서 그동안 칼럼을 수백 편 썼습니다.

제가 이것을 하려고 연역론이라는 학문을 만들었습니다. 아마 버트런드 러셀과 그의 제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생전에 저를 만났다면 저를 보고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평생을 걸쳐서 추구한 것을 제가 이어 나가서 이루어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2010년대에 들어 드디어 인류는 자신들을 괴롭히던 사고의 막다른 골목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게 맞는지 아닌지, 0인지 1인지, Yes인지 No인지, 어떻게 판단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연역론입니다. 연역론은 그냥 서점에 널린 자기개발서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300만년 전에 시작된 인류가 수십만 년 전부터 몇몇 도구를 사용해서 주변 동물들과의 경쟁을 이겨내고, 5천년 전부터 언어와 과학기술을 개발해서 문명사회를 열었던 것처럼 연역론은 5천년 동안 이어진 문명시대를 넘어서 인류가 다음 시대로 도약하게 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화 "루시"의 한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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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기준이에요.  저는 Deduction Theory, LLC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CEO로 일하고 있어요.
저는 제 동생 이기환님과 함께 일을 하구요. 연구와 공부도 하고 있어요. 우리가 연구하는 주제는 논리학, 수학, 과학, 그리고 컴퓨터 정보공학이에요. 이 블로그는 우리가 연구하고 공부하는 주제를 설명하는 곳이에요.
그리고 저는 최근 오픈소스 공개 스터디 릴랏 프로젝트의 내용을 번역해 주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어요. 제 생각에는 이 프로젝트가 전세계에 사는 어린이, 학생, 어른에게 도움이 될 거에요. 특히 저소득층에게요. 이 프로젝트는 무료에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기획했어요. 저는 나중에 저소득 국가에 학교와 고아원을 짓고 사람들에게 이 프로젝트 방식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쳐 주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나중에 그 사람들이 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아래에 링크한 릴랏 소개 페이지를 읽어 본 다음 이것이 도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시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오픈소스 공개 스터디 프로젝트 Rellat을 소개합니다
원문 컨텐츠는 한글로 전부 제가 쓴 것이에요. 우리는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님과 함께 Rellat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기환입니다.
제가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 어도비 플래시 프로그램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다가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액션스크립트를 사용한 것입니다.
Rellat 프로젝트의 방법론은 제가 평소에 일을 하는 방법과 같습니다.
저는 사실 500줄 이상 넘어가는 코드를 보면 정신이 없고 잘 기억도 안됩니다. 지금도 간단한 코드 문법이 기억이 안나서 구글을 뒤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신 저는 이 코드가 어떤 사고방식을 사용해서 만들어졌는지, 어떤 관계정보를 사용했는지를 추적합니다. 이것이 연역론의 코딩 방법론, 코딩 스타일, 컴퓨팅 세계관입니다.
이 사고방식을 갖추면 더 나은 정보처리 방식이 무엇인지 비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프로그래밍의 본질이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나머지 프로그램의 빈공간은 구글과 스택오버플로우의 힘을 빌려서 채워넣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그렇게 하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기술, 수만 줄의 코드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면서 대규모의 질 높은 정보처리를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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