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qus for deduction-theory

계획한 대로 인생을 살아가려면


계획을 만들었는데 실천이 잘 안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획을 만들었는데 실천을 하루는 하고, 그 후로 며칠 동안은 어영부영 정신줄을 놓아 버렸습니다. 내가 게으른 사람 같고, 내가 나를 배신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상태는 나의 잠재의식에서 내가 만든 계획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내가 내면의 조화를 만드는 과정 없이 무리하게 높은 기대치의 계획만을 잡은 것입니다.

"쿠키 상자가 있는 곳이 너무 높았어요. 엉엉"

사람의 내면에 무의식, 잠재의식, 현재의식에서 만들어진 수십 개, 수백 개의 습관이 있습니다. 쉽게 비유를 해보겠습니다.


나의 내면 의식이라는 이름의 버스

버스가 한 대 있습니다. 이 버스가 한 명의 사람, 한 명의 인격체입니다.


버스에 손님들이 타고 있습니다. 이 손님들은 내면의 정보구조체, 시스템입니다. 이렇게 버스에 손님이 타서 버스가 운행하면 습관이 형성되어서 작동하는 것입니다.


손님이 있는데 버스에 타지 못한 손님은 아직 습관으로 내면에 정착되지 못한 정보구조체입니다. 우리는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거나 경험으로 깨우쳐서 새로운 습관이라는 손님을 창조해서 버스에 태울 수 있습니다.


한 번 버스에 탄 손님은 좀처럼 내리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손님이 내린다는 것은 그때까지 하고 있던 습관을 그만둔다는 것이고 다른 손님을 태운다는 것은 새로운 습관을 내면에 설정해서 정착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버스를 운행하고 있는데 무의식 마을 분들과 잠재의식 마을 분들이 손님으로 빼곡하게 타고 있었습니다. 무의식 마을 분들은 주로 욕구를 기반으로 되어 있고 잠재의식 마을 분들은 주로 감정을 기반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줄여서 욕구와 감정 손님이라고 부릅니다.

버스에 탄 손님들은 전부 내 마음의 한 조각입니다. 나의 내면을 구성하고 있는 정보구조체들입니다.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님이 이번에 현재의식 마을에서 온 "이성적인 계획" 손님 몇 분을 태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버스에 타지를 못했습니다. 무의식과 잠재의식 마을 분들이 입구를 막고 못타게 했습니다.


만약 버스 기사님인 나 자신이 그러지 말라고 점잖게 타이르고 이성적인 계획 손님을 버스에 태우면 버스가 다음 정거장에 섰을 때 무의식과 잠재의식 마을 분들이 현재의식 마을 분들을 밀어서 버스에서 몰아내 버립니다. 이래서 이성으로 만든 계획이 작심삼일이 됩니다. 보고 있으면 참 답답한 상황입니다.

이걸 보고 무의식과 잠재의식 마을 분들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이게 시스템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버스 내부에 자리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내면에 여유가 없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 봅시다. 나라는 사람의 내면에 새로운 습관을 만들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내가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 동안 내 정신은 무의식과 잠재의식에 의한 습관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무의식과 잠재의식 습관으로 나는 이것도 해야되고, 저것도 해야합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하루가 다 가버립니다.


그러다가 내가 긍정적인 마음으로 "한 번 이걸 꾸준히 해보자."하고 생각을 했는데 실천을 하려니까 잘 안됩니다. 내 정신이 나를 배신합니다. 이게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생기는 어려움 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해결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다시 버스 비유로 돌아가 봅시다.


손님, 전부 내리세요.

버스 기사님이 버스를 세우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잠시만요. 제가 버스 운행을 당분간 안 해도 좋으니까 모든 손님들이 내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충격 선언입니다. 무의식과 잠재의식 마을 분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버스 기사님이 이어서 말했습니다.
“무의식 마을 분들 중에 최소한의 생존을 담당하는 욕구 손님 한 분과 잠재의식 마을 분들 중에 아무 이유 없이 활짝 웃을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 손님 한 분만 남고 다 내려 주십시오.”

두 분만 남고 다 내려 주세요.

이 비유가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봅시다. 먼저, 아무것도 안 하는 훈련을 해보십시오. 버스를 정지시키고 위에 말한 두 명의 손님 빼고 다 내리라고 해보십시오. 손님보고 내리라고 말하는 것은 비유고 실제로는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입니다.

간소하고 거친 음식을 딱 필요한 만큼만 먹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편안하고 잔잔한 감정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 보십시오. 너무 즐거울 필요도 없고 너무 긍정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유 없이 가볍게 활짝 웃을 수 있는 정도면 됩니다.

반드시 명심하십시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라는것은 핸드폰 게임하고, 인터넷 하고, TV 보고, 욕구와 감정대로 할 것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입니다.


간소하고 거친 음식을 먹어서 최소한 생존할 수 있는 욕구만 남겨야 합니다. 나머지는 다 비우십시오. 아이스크림 먹고, 초콜렛 먹고, 과자 먹고 하는 욕구는 비우시고 현미밥 같은 거친 곡식과 콩, 가공식품이 아니라 실제 고기와 생채소 위주로 식사를 해보십시오. 식사하는 양도 평소 먹는 것의 3분의 2 이하, 70% 이하로 해보십시오. 그러나 물은 제한 없이 마시고 싶을 때마다 자주 마십니다.


바른 자세를 유지해서 앉아 보십시오.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앉으면 됩니다. 눕는 것은 피곤할 때 잠깐만 하고 주로 잘 때만 눕습니다. 체조는 해도 됩니다. 하루에 30분 정도 걷는 것은 됩니다. 그동안 충분히 저축을 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 해도 괜찮은 생활조건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해 보십시오.

회사를 다니고 있는 사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만약 회사를 다니고 있거나 학교를 다니고 있다면 회사 일과 학교 일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에 아무 것도 안 하고 비우면 됩니다. 버스로 비유하면 회사 업무, 학교 공부 손님을 추가로 두 명만 더 태우는 것입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회사업무, 학교공부 해도 됩니다.

왜 이렇게 비워야 할까요? 그 이유는 위에 이미 제가 적어 놓았습니다. 버스에 다른 손님이 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내면을 비우고 다시 재설정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입니다. 이 절차를 생략하고 인생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화가 난 손님들이 버스에 올라타려고 덤벼든다.

이렇게 버스를 텅텅 비운 다음에 운행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화가 난 무의식과 잠재의식 마을 분들이 버스에 매달리고 함부러 올라타려고 합니다. 보고 있으면 액션 영화가 따로 없습니다. 아주 아찔합니다.


제가 위에 말한 것처럼 이전까지 하던 습관을 전부 그만두고 거친 음식을 적당히 먹고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명상을 하면 초기에는 매우 불쾌한 기분이 들고 불편한 상상이 이어집니다. 무의식과 잠재의식 마을 분들이 갑자기 달리는 버스 위에 올라타서 버스를 탈취하려고 합니다. 버스를 잡고 마구 흔듭니다. 어떤 분은 대담하게 폭발물을 버스에서 터트리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현실에서는 이렇게 됩니다. 뜬금없이 염세주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냥 공부를 좀 더 잘하려고 한 건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냥 운동을 꾸준히 해보려고 한 건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안 하니까 너무 허무하다. 심심하다. 못 참겠다.”
“어서 성공하고 싶고, 어서 00하고 싶은데 이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으니 답답하다.”

“어휴, 물이 겨우 반 컵밖에 없잖아.”

그렇게 버스기사님이 쫄아서 다시 무의식과 잠재의식 마을 분들을 다 태우고 버스를 출발시키면 그게 작심삼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 도로묵이 됩니다. 욕구와 감정 손님들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거봐, 내가 뭐라 그랬어. 얘는 배짱이 약하다구. 바로 꼬랑지 내리잖아. 내가 다 알아. ㅋㅋㅋㅋ”
주변에 다른 욕구와 감정 손님들도 따라서 웃습니다. “ㅋㅋㅋ”, “ㅋㅋㅋㅋ”
이게 대다수 사람들이 살아가는 실제 현실입니다.

욕구와 감정인 우리에게도 권리가 있다?

버스에서 손님들을 내리게 하고 텅 빈 버스를 출발시킬 때 욕구와 감정 손님들이 버스에 올라타서 난동을 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담력을 가지고 다시 브레이크를 밟아서 버스를 세우십시오. 그런 다음 당당하게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이렇게 난동 부리지 말고 내리세요.”
자신에게 이렇게 한 번 말해 보십시오.
“제 마음의 주인은 저 자신입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손님들만 태우고 살고 싶습니다. 그동안 여러모로 저와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이제 저는 제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제 마음의 주인은 저이니까요.”


“제 마음의 주인은 저입니다.”
욕구와 감정 손님들의 난동은 또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이렇게 차분하게 행동하면 됩니다. 욕구와 감정 손님들은 결국 버스에서 내립니다. 왜? 안 내리면 내가 버스 출발 안 시킬 거니까요.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라는 말은 빈 말이 아닙니다. 내가 안 하면 그만입니다. 내가 버스 출발 안 시키면 그만이고 내가 그 습관을 따라서 행동 안 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내가 이깁니다. 그래서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기억력이 짧습니다.

그러나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단순한 게임에서 은근슬쩍 욕구와 감정에 넘어가 버립니다. "좋은게 좋은거지..."하면서 작심삼일, 도로묵이 됩니다. 그러면 더 이상 나는 내 마음의 주인이 아니게 됩니다. 나는 욕구와 감정의 노예가 됩니다. 제가 정성을 들여서 설명해 드린 이 모든 이야기가 도로묵이 됩니다.


어느 날부터 시간이 남는다.

내가 내 내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 몇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를 비울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 행동 안 하고 기본적인 생존에 해당하는 식사, 수면, 체조하기와 활짝 웃으면서 긍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만들어 내서 느끼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시간이 남습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이것은 너무나 객관적인 이치입니다. 아무 것도 안 하니까 시간이 남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곰곰히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내가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말입니다.


손님을 구분하는 방법

좀 고민을 해본 사람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아까 욕구와 감정 손님들을 거의 전부다 내리라고 했잖아요. 그런 상태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결국 욕구와 감정과 연관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결국 손님을 태우면 욕구와 감정과 관련된 손님을 태울 수 밖에 없는데 이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깜찍한 질문이군요. 거기에 대해서 제가 대답을 해보겠습니다. 손님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해서 손님들 중에는 유형이 있습니다.

  1. 순간적인 욕구와 감정으로 외부 현실에 자동반응을 유발하는 손님
  2. 스스로 만들어 내서 지속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성적인 계획 손님들과 장기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호응할 수 있는 손님

예를 들어서 맨 처음 버스를 세우고 손님을 전부 나가라고 했을 때 두 명을 남겼습니다. 한 명은 생존과 관련된 욕구 손님이고 다른 한 명은 아무 이유 없이 활짝 웃으면서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손님이었습니다. 이 손님 이름이 기니까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는 긍정적인 감정, 더 줄여서 "자아존중 손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자아존중 손님의 특징은 이유 없이 즐거운 기분을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손님은 나중에 다른 이성적인 계획 손님들이 버스에 타더라도 친하게 지내고 호응을 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같이 버스를 타고 가도 충돌이나 갈등이 안 생깁니다.

그런데 다른 욕구나 감정 손님은 어떨까요? 이 분들은 자기 욕구나 감정을 충족하는데 급급하고 다른 손님들과 싸웁니다. 때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버스기사에게 이래라저래라 참견을 합니다. 이런 것을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욕구와 감정의 자동반응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 훌리건 같은 손님들을 줄여서 "자동반응 손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자동반응 손님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버스 운영이 어려워 집니다. 자동반응 손님들이 버스를 장악해 버리면 그것을 심리학과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정신질환이라고 부릅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점점 훌리건 자동반응 손님들이 버스를 탈취해서 운행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동반응 손님들은 같은 유형의 자동반응 손님들끼리도 치고 받고 싸웁니다. 버스가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실제 현실로 예를 들면 인생이 붉으락푸르락, 울컥벌컥, 벌렁벌렁, 이랫다저랫다 편할 날이 없습니다.


자, 손님을 구분하는 방법을 정리해 봅니다. 손님들 중에 자동반응을 유빌하고 훌리건처럼 버스를 장악하려고 하는 손님이 있습니다. 살면서 겪어보면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 손님들이 올라타면 버스를 세우고 내보냅니다. 안 내리려고 버티면 내릴 때까지 버스를 멈추고 명상을 합니다. 결국 버스 주인이 나이기 때문에 손님은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손님들 중에 이유 없이, 아무런 조건 없이도 긍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만들어 내서 느끼고 다른 손님들과 호응하고 협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웰컴!, 어서 오십시오.” 하면서 태우십시오. 이 자아존중 손님들은 나중에 이성과 계획이라는 손님들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합니다. 시너지 효과, 상승효과가 생깁니다.


차창 밖에 지나가는 풍경

또 어떤 분이 저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기준님이 하신 말씀은 대강 알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저도 모르게, 제가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욕구나 감정이 생겨나서 자동반응을 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제가 살면서 부당하고 힘든 일을 겪어서 욕구나 감정이 생겨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아무리 제 마음의 주인이 되고 싶어도 이런 것까지는 막을 수 없지 않을까요?”
버스기사님도 모르게 손님이 버스에 올라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화 스피드와 미션임파서블이 생각나는군요.

"헐, 잠입능력…"

그러면 뒤늦게 내가 원하지 않는 손님이 버스에 탔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점이 있습니다. "앗차, 이 사람들이 언제 올라탄거지?"하게 됩니다. 실제 현실에서는 "앗차, 나의 내면에 이런 생각이 있었구나!"하게 됩니다. 이런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내 버스에 아직 이런 손님들이 몰래 숨어서 타고 있었구나."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뭘 어쩌긴 어쩝니까. 그냥 버스 세우고 차분하게 "내리세요."하면 되지요. 그렇게 담백하게 하시면 됩니다. 뭘 후회하고 고민하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타라고 한 것도 아닌데 손님이 올라탄 거니까요. 정중하게 "손님, 내리세요." 한 다음에 내릴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버스 주인이 난데 안 내릴 수가 있나요.


그리고 내가 살면서 외부에서 겪는 일 때문에 손님들이 버스에 엉겹결에 올라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거리에서 튀어나오는 자동차 때문에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그 사이에 분노, 짜증, 강박 같은 손님들이 올라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구요? “손님, 내리세요.”

“워워워, 손님 진정하시구요. 버스에서 내리세요.”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과 버스에 올라타는 손님들은 별개입니다. 접촉사고는 접촉사고고 버스에 타는 손님은 손님입니다. 내가 살면서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지는 내 마음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이정도 구분이 안되는 사람들이 약 95%정도 됩니다. 외부의 사건에 욕구와 감정을 자동반응해서 느끼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기분이 나쁜 것은 네가 00했기 때문이야.”
“내가 기분이 XX한 것은 외부에서 YY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야.”

이 말은 내가 외부 현실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차창 밖에 지나가는 풍경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접촉사고가 나면 보험회사를 부르고 차량은 수리공장에 보내서 수리하면 됩니다. 그때까지 버스운행은 잠시 쉬어도 됩니다.

외부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내가 내 내면을 잘 관리하고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면을 관리하지 못하면 외부에서 일어난 위기가 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됩니다.



장기적인 목표를 만들어 본다.

내 마음의 주인되기, 내 버스의 주인되기 훈련을 어느 정도 하면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일단 버스가 텅텅 비어서 여유가 생깁니다. 버스에 손님들이 전부 서로 호응하고 상호작용하는 분들만 태우게 됩니다. 이성과 계획 손님들이 탈 수 있습니다.

널널합니다.

이성과 계획 손님을 무리하게 많이 태우려고 하지 말고 한 분씩 천천히 태우세요. 그리고 실천을 해보아야 합니다.

“Take 1 by 1, and get a feedback.”

내면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로딩하고 내가 정한 작은 계획을 실천해 보고 그것을 몇 주, 몇 개월 동안 하면서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이게 내가 계획한 방향이 맞는지 체크하면서 점검을 해보십시오.


결과적으로 점수를 얼마 받자, 운동을 몇 회 하자 하는 것은 이성적인 생각도 아니고 계획적인 생각도 아닙니다. 무책임한 열등감 감정에서 비롯된 결과적인 목표입니다. 목표가 사고방식과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집착하는 것이라면 모두 버리고 비우십시오.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아래 문구에 부합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자주 해보세요.
“결과적인 보상이 생기지 않아도 나는 이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즐겁게 잘하는 일이고 내 능력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외부에서 주어지는 결과적인 혜택, 결과적인 성공을 바라고 있었다면 그것은 이성과 계획이 아닙니다. 욕구와 감정 손님이 속임수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엇? 들킨건가?"

알고보니 욕구와 감정의 자동반응 손님이 위장을 하고 있엇던 것입니다. 이성적인 생각이고 계획적인 생각인 줄 알았는데 자동반응형 욕구와 감정이 슬쩍 위장을 하고 버스에 올라탄 것입니다. 뒤늦게라도 위장을 하고 있었던 부정승차 손님들을 알아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구요? 다같이 외쳐봅시다. “손님, 내리세요.”

“다같이 외쳐봅시다. 내리세요! Yay!”

이렇게 위장손님도 가려내는 눈이 생기면 좀 더 담백한 인생의 목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 자동반응하는 욕구와 감정이 아니라 나의 적성, 내가 잘하는 일, 내가 장기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성과 계획 손님을 태울 때에도 역시 가려서 태울 수 있습니다. 이 계획은 내가 왜 세운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내가 이것을 꾸준히, 예를 들어서 몇 년 동안 할 수 있는지 생각을 해봅니다. 버티는 능력을 기릅니다. 저로 예를 들면 저는 연역론 학문 연구를 죽을 때까지 할 수 있게 계획을 했습니다. 저에게 연역론 연구라는 것은 기분 좋으면 하고 기분 나쁘면 "에이씨, 나 안해."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연역론 하기 전에도 저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 내서 느끼고 그 마음으로 제가 좋아하고 잘하는 연역론 연구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연역론 연구를 매일 하고, 제가 10년을 살면 10년 동안 할 것입니다. 제가 만약 100살까지 살면 100살까지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 버스에 연역론이라는 손님을 태워서 가고 있습니다. 님들도 이렇게 평생 실천 사고방식과 습관을 만드십시오.


연역론이라는 이 손님은 제가 만들어 내서 창조한 손님입니다. 제가 스스로 만든 내면의 내적환경인 것입니다. 저의 내적환경에서 연역론이라는 이 손님은 다른 손님들과 상호작용을 잘합니다. 비지니스라는 손님과 상호작용을 잘합니다. 과학, 수학, 논리학 등 각종 학문 손님들과 상호작용을 잘합니다. 생활습관이라는 손님들과 상호작용을 잘합니다. 이렇게 습관이라는 손님을 태울 때 다른 손님들과 상호작용을 잘 하는 손님을 내가 창조해서 태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적환경을 내가 스스로 창조하는 행위입니다.

내면에 습관을 만들어서 설정할 때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습관을 만들어서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조화를 이루어 지속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작심삼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지속되게 이어지는 삶

이제 이 글의 처음 상황으로 돌아가 봅시다. 자기 내면 관리가 잘 안되는 사람에게 버스는 항상 북적거리고 싸움판이 됩니다. 훌리건 자동반응 손님들이 버스를 쥐락펴락 하게 됩니다. 버스기사님이 한 대 맞고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버스가 막다른 외지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버스가 진창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욕구와 감정 자동반응 손님들은 그저 자기가 반응하는 외부 현실에 자동반응을 할 뿐 버스가 진창에 빠지게 되어도, 바퀴에 펑크가 나서 덜컹거려도, 브레이크에 고장에 나서 폭주기관차가 되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갑니다. 운이 나빠서 버스가 벼랑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조기에 인생이 끝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동반응 손님이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버스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박살이 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이쿠, 버스 안에 탄 사람들이 무사한지 걱정되는군요.

그러면 그제서야 버스 기사님은 후회를 합니다.
"‘내 인생 어떻게 해서 이렇게까지 되버린거지…?"
"이게 내가 살려고 한 모습이 아닌데…"
버스기사님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할 수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습니다.

"나, 돌아 갈래!"

사람들이 후회를 많이 하게 되면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서 돌아가더라도 해야 할 일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이 일을 똑같이 해야 합니다. 인간의 내적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똑같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설령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내적환경이 그대로라면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 10살 먹은 어린이가 하더라도 해야 하는 일은 똑같습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30살 먹은 어른이 해야 하는 일도 똑같습니다. 만약 지금 50살이라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냥 지금부터 내 마음의 주인이 되면 됩니다. 버스가 고장났으면 수리공장에 가서 고치면 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제가 쓴 이글의 첫머리에서 설명한 것처럼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했을 때에는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고 계획을 해도 그 계획이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면 내가 계획한 것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지속할 수 있는 습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습관, 장기적인 계획을 소중하게 여기고 나의 내면에 쌓아 나가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은 님들도 해보세요.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은 것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 10년 전에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은 버리세요. 지금 시작해도 늦은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은 언제나 같습니다. 이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 돈을 지불하고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혼자 하면 됩니다.

그럼, 화이팅!



Facebook Comments

Disqus Comments

About Author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기준이에요.  저는 Deduction Theory, LLC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CEO로 일하고 있어요.
저는 제 동생 이기환님과 함께 일을 하구요. 연구와 공부도 하고 있어요. 우리가 연구하는 주제는 논리학, 수학, 과학, 그리고 컴퓨터 정보공학이에요. 이 블로그는 우리가 연구하고 공부하는 주제를 설명하는 곳이에요.
그리고 저는 최근 오픈소스 공개 스터디 릴랏 프로젝트의 내용을 번역해 주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어요. 제 생각에는 이 프로젝트가 전세계에 사는 어린이, 학생, 어른에게 도움이 될 거에요. 특히 저소득층에게요. 이 프로젝트는 무료에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기획했어요. 저는 나중에 저소득 국가에 학교와 고아원을 짓고 사람들에게 이 프로젝트 방식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쳐 주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나중에 그 사람들이 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아래에 링크한 릴랏 소개 페이지를 읽어 본 다음 이것이 도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시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오픈소스 공개 스터디 프로젝트 Rellat을 소개합니다
원문 컨텐츠는 한글로 전부 제가 쓴 것이에요. 우리는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님과 함께 Rellat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기환입니다.
제가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 어도비 플래시 프로그램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다가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액션스크립트를 사용한 것입니다.
Rellat 프로젝트의 방법론은 제가 평소에 일을 하는 방법과 같습니다.
저는 사실 500줄 이상 넘어가는 코드를 보면 정신이 없고 잘 기억도 안됩니다. 지금도 간단한 코드 문법이 기억이 안나서 구글을 뒤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신 저는 이 코드가 어떤 사고방식을 사용해서 만들어졌는지, 어떤 관계정보를 사용했는지를 추적합니다. 이것이 연역론의 코딩 방법론, 코딩 스타일, 컴퓨팅 세계관입니다.
이 사고방식을 갖추면 더 나은 정보처리 방식이 무엇인지 비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프로그래밍의 본질이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나머지 프로그램의 빈공간은 구글과 스택오버플로우의 힘을 빌려서 채워넣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그렇게 하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기술, 수만 줄의 코드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면서 대규모의 질 높은 정보처리를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opular Posts

Visitor Map

Flag Cou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