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qus for deduction-theory

존재는 허상이다


주입식 영재교육의 부작용

기억을 잘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1. 나는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다. 똑똑한 사람이 부럽다.
  2. 내 생각에 똑똑한 사람이란 "기억을 잘 하는 사람"인 것 같다.
  3. 기억을 잘 하려고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한다.
  4. 그런데 마음대로 잘 안된다. 어렵다. 열등감이 생긴다.



여기에 대해서 제가 대답을 해드리면 이렇습니다. 연역론의 관점에서는 외부에 있는 정보를 외우고 기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쓰지도 않을 잡동사니 물건을 집에 차곡차곡 모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중에는 집에 물건이 가득 들어차서 발을 디딜 공간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일을 하는 사람 본인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며 계속 잡동사니를 모아 옵니다.

이런 것을 정신의학에서는 "습벽"이라고 합니다. 위의 경우를 읽어 보면 "기억을 잘하고 싶다. 기억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외부 정보를 기억하는 습벽인 것입니다. 습벽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외부에 있는 것들을 수집한다는 것입니다. 기억을 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은 외부에 있는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 사고방식은 귀납적인 사고방식과 패턴이 같습니다. 열심히 무엇인가를 수집하고 기억을 해도 이것은 자기 스스로 정보를 만들어 내는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그래서 창의적인 활동이 아닙니다. 역설적입니다. 열심히 일을 하기는 했는데 창의적인 활동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스스로 추론하고 정보를 만들어 낸 것이 없고 외부에 있는 정보를 그저 수집하는 활동만을 했기 때문입니다. 작용의 원인이 외부에 있습니다. 그래서 수동적인 정보처리 활동입니다. 이 사고방식이 계속 이어질 경우 생각이 뒤죽박죽이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생각이 잘 안됩니다. 생각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결과정보가 링크 형식으로 쌓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가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정신이 혼란스러워 집니다. 각종 정신병이 생깁니다.

자, 여기서 오해를 예방하고자 안내를 해드립니다. 제가 말하는 귀납적인 정보처리라는 말은 순수하게 밖에서 안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처리 활동을 뜻합니다. 재래식 논리 체계인 귀납법과는 다릅니다. 재래식 논리 체계인 귀납법은 밖에서 안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이 있기는 하지만 그 후에 그 정보를 분류하고 추론하는 과정이 추가로 있습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마세요. 귀납은 좋거나 나쁘거나 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귀납, 歸納은 밖에서 안으로 정보를 처리한다는 뜻입니다.

“영재교육의 부작용”이라는 교육학의 연구 주제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재교육에 해당하는 선행 학습을 시켰더니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주의력 결핍장애, 과잉행동장애, 발달장애 등 오히려 여러가지 부작용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학습과 지능에 관련된 장애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문제인 우울증과 강박증도 생겼습니다. 아이 인생이 망가지게 되었습니다.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 위키백과

ADHD,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의 줄임말은 이런 뜻입니다.

다행히 장애는 겪지 않고 성인이 된 영재들은 사회에서 성공할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사회에 부적응하게 됩니다. 통계적으로 그렇습니다.


왜 영재교육이 문제일까요?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킨 것이 잘못이 아니고 그 방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외부 결과정보를 주입식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제했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결과정보를 외우라고 강제한 것이 잘못입니다. 외부의 결과정보를 외우라고 시키니까 수동적인 세계관, 귀납적인 세계관, 노예의 세계관을 교육하게 되는 것입니다. 위 캡쳐 이미지로 나온 방송 이름은 EBS에서 만든 교육 다큐멘터리 칭찬의 역효과입니다. 제가 이 주제로 전에 에세이도 한 편 썼습니다. 위 캡쳐 이미지에 나온 방송을 보고 나서 창작해서 쓴 것입니다. 과정과 방법에 대한 칭찬

수학에서 구구단을 외우거나, 공식을 외우거나, 언어에서 낱말을 외우거나, 문장을 외우는 것은 그래서 결과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암기하는 것입니다. 패턴이 있으면 패턴 자체를 결과정보로 저장해서 암기합니다. 이러면 암기는 되는데 자기 스스로 패턴을 추론하고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사고력이 발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추론하는 사고력은 퇴화되게 됩니다. 즉, 창의력이 퇴화됩니다.

연역론에서는 관찰을 통해서 관계정보와 열린정보구조체를 추론하는 창의적인 능력을 "관계정보 지능"이라고 합니다. 주입식 교육을 실행하면 관계정보 지능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교육받은 인재들은 주입식 교육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실제 현실이라는 필드에 나가게 되는데 필드에서는 패턴과 관계정보를 추론하고 자기 스스로 정보구조체를 만들고 실천해서 성과가 나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필드에 나온 영재들은 여기서부터 힘이 듭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도 대비가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동안 연습한 것은 암기하는 방법 뿐인데.. 어떡하지!??”

"연상 암기법"이라고 감정과 감각을 풍부하게 사용해서 기억력을 늘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법은 기억력을 늘려줍니다. 그런데 기억량만 늘리고 스스로 거기서 패턴을 추론하고 현실에 적용해서 실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길에서 쓰레기를 줏어 모으는 습벽이 있는 사람이 트럭을 장만해서 대량으로 쓰레기를 줏어 모으는 격이 됩니다.


차라리 고물상 같은 사업을 하면 창조적인 활동이 됩니다. 모은 폐물을 분류해서 재활용 가능한 자원을 추출하고 판매하는 어엿한 비지니스입니다. 그런데 습벽은? 그냥 정신병입니다.

이 할머니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심취해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과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왜 습벽은 정신병일까요. 여기에는 "어떻게" 모으고 분류한다는 개념, 즉 관계정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무조건 주워갈 수 있는 것은 다 모읍니다. 결과정보 수집 방식으로 정보구조체가 단순하게 되어 있고 나머지 판단력을 다 퇴화시켜 버립니다. 외부의 정보를 수집하는 습벽 패턴이 가상 존재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면 편집증이 됩니다. 각종 음모론, 외계인에 대한 집착 등이 그렇습니다. 외부에서 모아 온 모든 정보를 그 가상의 존재에 연결하기 때문입니다.


편집증은 이런 식의 뛰어난 상상력으로 발전합니다. 문제는 이게 증명과 증거 없이 현실과 괴리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UFO 관련 자료입니다. 편집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특정한 ‘존재’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관련된 정보를 모읍니다.


학자들이 편집증을 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장애들은 전부 강박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박이란 자신도 모르게 자동반사적으로 자꾸 생각이 나고 행동을 하게 되는 패턴을 말합니다. 인간이 자기 내면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참된 나 자신이 된다는 것도 같은 뜻입니다. 자동반응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암기에 집착하면, 기억에 집착하면 어떻게 된다구요? 각종 정신병이 됩니다. 왜? 결과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집하기 때문에 인과관계 없이 섞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머리가 복잡해져서 생각 자체가 하기 싫어집니다. 그냥 쓰레기 줍는 할머니처럼 수집만 계속 한다거나 한두 가지 행위를 의미 없이 반복하게 됩니다. 이것을 고치는 방법은 있습니다. 사고방식을 연역적인 패턴으로 개선하고 스스로 추론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연역론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칩니다. 천천히 꾸준히 의식의 범위를 넓혀서 사고방식을 개선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서 고칠 수 있습니다.


천재가 되는 방법은 있어도 날 때부터 천재라는 존재는 없다

똑같이 영재교육을 해도, 똑같이 자기개발을 해도 방법을 다르게 하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연역론 논증모델에 사용된 방식으로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한다면 계속 능력을 쌓아나갈 수 있습니다. 쓸모없는 물건이나 의미 없는 기억을 쌓는게 아니라 노하우와 능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도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자기가 내면에서 생각한 것을 외부 세계에서 실천하고 피드백을 해보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실패하더라도 게의치 않고 거기서 피드백을 얻어서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바로 도전정신입니다. "challenge, 도전”라는 말에는 그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귀납적인 방식은? 막노동입니다. 막노동이 뭔가요? 의미 없이 시스템에 포함된 부속품 같은 일부가 되어서 단순한 일을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전이나 창의가 아닙니다. 그게 차이입니다. 연역한다, 창의한다, 시스템을 만든다, 도전한다 하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고는 싶은데 사람들이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연역론은 그것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칩니다.

제가 다른 글에서 선호표상체계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선호표상체계는 다중지능과 같은 컨셉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감각과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는 적성과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각 정보를 더 잘 이해하고, 어떤 사람은 청각 정보를 더 잘 이해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스스로 관계정보와 열린 정보구조체를 추론하고 만들어 내는 능력입니다.

같은 수학을 공부해도 그것을 결과정보로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연역론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수학을 잘 할까요? 계산은 공식을 외우고 비슷한 문제를 자주 푸는 것으로 훈련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관찰과 추론을 통해서 기존의 공식을 개선하고, 새로운 공식을 만들고, 이론을 만드는 일은 잘할 수 있을까요? 계산만 잘하는 사람은 수학을 잘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말과 글을 앵무새처럼 외워서 그럴 듯하게 읊어대는 것과 자신의 생각을 뚜렷하게 말하고 글로 전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손기술이 좋아서 그림을 잘 그리는 것과 "무엇이 아름다움인가"를 생각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표현방식을 창조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연역론에서는 언어를 결과정보인 글자의 배열과 단어, 문법, 맥락으로 보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문장과 단어 이면에 그것을 만들어 내는 관계정보를 봅니다. 연역론은 언어를 정보와 정보의 관계로 봅니다. 연역론에서는 수학을 결과정보인 공식과 숫자의 계산만으로 보지 않습니다. 공식 이면에 공식을 만들어 내는 관계정보를 봅니다. 연역론은 수학 역시 정보와 정보의 관계로 봅니다.

연역론에서는 미술을 결과정보인 시각적인 색체와 오브제로만 보지 않습니다. 시각적인 정보 이전에 인간이 가진 시각 정보구조체와 관계정보를 봅니다. 연역론은 미술도 정보와 정보의 관계로 봅니다. 연역론은 외부에서 정보를 습득해도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거기서 관계정보와 열린 정보구조체를 추론합니다.

아래 그림은 뇌를 자기공명사진(MRI)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뇌의 다양한 부위가 활동하고 반응하는 것을 컬러로 표현했습니다.


6장의 뇌 사진 중에 위에 3장은 일반적인 사람이 문제를 풀 때를 촬영한 것이고, 아래 3장은 지능지수가 높은 사람이 문제를 수행할 때를 촬영한 것입니다. 지능이 높은 사람이 좀 더 뇌를 풍부하게 사용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위의 결과를 기반으로 결론을 성급하게 내릴 경우 뇌 하드웨어가 활성화되는 것이 곧 좋은 것이라는 선입견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잠깐, 이대로 결론을 내리면 큰일 납니다. 완전히 이를 뒤집는 내용의 연구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망상, 환각 등의 정신병을 앓는 사람도 결과적으로 뇌의 다양한 부위가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예를 들어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뇌 활성화 정도는 ‘영재’, ‘천재’들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정신분열증은 망상과 환각을 겪는 대표적인 질환입니다.


그래서 이런 결과정보의 관측 비교로는 더 나은 사고방식이 뭔지 알아낼 수 없습니다. 우스개소리로 “천재들은 다들 미쳤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드웨어의 활성화 정도만 가지고 비교하면 안되고 거기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를 비교해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비교해야 할까요. 연역론에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사고와 그것의 실천, 피드백으로 알아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방법을 객관적인 수치나 측정장치로 비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을 지속하는 사람은 설령 뇌 하드웨어가 다소 빈약해도 결국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대기만성형 성공사례나 선천적인 지능 핸디캡을 가진 사람도 성공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심지어 약한 장애가 있는 사람도 상관없습니다.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딜 뿐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한다면 거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뇌의 정보처리 활동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오류가 쌓이는 속도가 가속됩니다. 악성코드가 설치된 컴퓨터는 최신 고상양 컴퓨터일수록 더 빨리, 더 많은 에러를 발생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더 많은 사고의 오류를 겪게 됩니다. 더 많이 외부를 의식하고 더 자주 존재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소프트웨어가 부실하면 하드웨어가 고성능일수록 에러를 더 자주 발생시킵니다. 오류가 너무 많이 발생하면 오류 창을 닫을 겨를도 없습니다. 이런 오류의 최종 종착지는 치매형 뇌손상입니다. 모든 약물중독, 행위중독의 종착지도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뇌 하드웨어를 혹사사키는 사이클이 심화되기 때문입니다.

존재규정의 종착지는 치매형 뇌손상입니다.


존재에 대한 착각

오늘 글 서두에서부터 언급된 것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외부에서 수집한 결과정보 링크형 사고방식, 귀납적인 사고방식, 수동적 사고방식이 어떤 문제로 이어지는지 설명한 것입니다.  


이런 사고의 특징은 "존재"’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외부에서 링크형식으로 받아들인 결과정보에 특정한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존재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생각의 원인으로 삼습니다. 위에 나왔던 실패한 영재교육을 예로 들어 봅시다.

이 압박감이 아이들에게 강박관념을 심어 주게 됩니다.

결과정보인 "천재"라는 존재를 지칭해서 칭찬을 하니 그 칭찬을 듣는 사람의 사고는 이렇게 흐르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이렇게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천재처럼 보일까,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외부에서 나를 천재로 보아 주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연역론을 배운 사람은 알 수 있듯이 결과정보는 임시로 붙인 이름에 불과할 뿐입니다. 창의적인 방법은 있습니다. 더 창의적인 방법과 더 나은 방법은 있습니다. 그런데 창의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원래부터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어제까지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주던 사람이라도 "망하는 방법”으로 게임을 하면 오늘 당장 망하게 됩니다.

일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자신을 진짜 천재적인 존재라고 믿는 바람에 망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것을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부릅니다.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실제 자기 존재의 모습이라고 믿는 착각을 한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해서 자만을 한 것입니다.

존재는 being입니다. being은 우리가 임시로 이름 붙인 하나의 결과정보입니다. 한 가지 사물에도 시간의 구분과 관찰하는 관점의 구분에 따라서 수만 개의 결과정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철학계에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시냇물에 나귀가 한 마리 서 있다. "나귀가 서 있는 시냇물"은 항상 같은 시냇물인가 시간이 갈수록 달라지는 시냇물인가.”

답은 달라지는 시냇물입니다. 물은 흐릅니다. 같은 시냇물이 아닙니다. 항상 윗물이 새로 흘러내립니다. 단지 나귀가 서 있다는 것을 특정해서 결과정보로 이름지어 부를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정보가 시간에 따라서 계속 달라지는 것을 설명합니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명제가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테세우스가 탔던 배가 있습니다. 이 배의 판자를 한 개 교체하면 이것은 테세우스의 배일까요? 만약 시간이 갈수록 배의 판자를 한 개씩 추가로 더 많이 교체한다면 몇 개째 교체할 때까지 테세우스의 배일까요? 만약 배의 자재와 부품을 전부 교체하면 그것은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만약 배의 외형이 처음과 많이 달라지면 그것은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존재규정에 빠져 있는 사람은 열심히 이것이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합니다. "한 번 테세우스가 탔던 배는 완전히 부품을 교체해도 테세우스의 배"라던가 "배의 외형이 얼마나 바뀌었느냐.", "테세우스가 얼마나 이 배를 타고 다녔느냐."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부질없습니다. 이런 질문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연역론을 아는 사람은 이것을 이해하고 깨닫습니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것은 "테세우스가 그 배를 탔었다는 사건"을 하나의 관점으로 만들어서 "배"라는 사물과 링크 형식으로 연결한 것입니다. ‘테세우스의 배’라는 이름은 결과정보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건은 사건이고 배는 배인데 결과정보 이름을 중간에 사용해서 인과관계를 링크 형식으로 연결한 것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의 관점,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르는 이유인 관계정보와 정보구조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배를 고치는 행위는 그저 배를 고치는 행위입니다. 배를 고치는 일 자체의 관계정보가 있습니다. 부품을 들어내고 망가진 곳을 교체하고 수리합니다. 이것과 “테세우스의 배” 이름을 부르는 관점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연역론입니다.

누가 이것을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르는 행위는 테세우스의 배를 부르는 관점에서 비롯됩니다. 관계정보와 정보구조체에서 비롯된다는 말입니다. 테세우스의 배를 부르는 관점을 공유하지 않은 외부의 다른 상대적인 관찰자에게는 그러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테세우스의 배 이름과 관련된 관점을 공유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완전히 새로운 부품으로 전부 교체되고 디자인마져 바뀌었다고 해도 테세우스의 배입니다. 그 이름을 유발시킨 관점이 중요한 것이지 물질로서 존재는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관점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습니다.
  1. "테세우스의 배" 명제는 테세우스의 배를 정의한 관점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2. "테세우스의 배" 관점을 정의하고 그것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제 "테세우스의 배"가 객관적인 정보가 된다.
  3. “테세우스의 배"를 정의하는 것은 정보다. 물질이 아니다. 그래서 부품을 교체하거나 디자인을 바꾸는 행위는 "테세우스의 배" 명제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4. 그러나 반대로 "테세우스의 배"를 정의하는 관계정보와 정보구조체인 관점이 "물질과 디자인"을 근거로 하고 있었다면 부품과 디자인이 바뀌는 순간 "테세우스의 배"는 더 이상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무엇이 관계정보가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물질이나 디자인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5. 그리스 신화에서 "테세우스의 배"는 테세우스의 영웅적인 사건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테세우스의 사건"이 "테세우스의 배"의 근거다. 그러므로 부품이나 디자인은 "테세우스의 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테세우스의 배" 명제는 사람에게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인간은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세포의 생존주기는 약 3개월에서 6개월입니다. 이것이 먼저 교체되고 나중에 교체되는 시간차이는 있지만 최대 약 1년 정도 지나면 사람의 세포는 전부 새로운 새포로 교체되게 됩니다.

이 경우 이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인가요, 같은 사람인가요? 기존 철학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연역론에는 명확한 답이 있습니다. 물질의 관점에서 그 사람은 다른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사람은 유전 정보인 DNA와 의식의 정보구조체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결과정보로만 평가하면 그 사람은 매순간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관계정보와 정보구조체를 유지하고 있느냐로 그 사람이 지속되는지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새로운 관계정보와 정보구조체를 창의하고 그것을 삶에서 실천하면 그 사람은 이전과 비교해서 다른 사람이 될까요? 연역론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새로운 관계정보와 정보구조체를 창조하고 실천하면 다른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존재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관찰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관찰하는 시점, 관찰하는 관점에 따라서 항상 다른 결과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관찰자 시점의 상대성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실시간 진행형입니다. 항상 바뀝니다. 그러나 그 실시간 진행을 통제하는 관계정보와 정보구조체는 있습니다. 우리는 과학으로 이것을 정리해서 현실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역론의 세계관에서는 고정된 존재가 없습니다. 상황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데이터로서 결과정보 이름을 붙이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리고 연역론에서는 실시간 진행하는 현실을 만들어 내는 관계정보와 정보구조체가 더 중요합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보다 "어떻게, 왜"가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오랫동안 연구되어온 이 주제에 대해서 기존 철학이나 과학,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는 "존재론"으로 결론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존재론이란 모든 문제가 "존재의 특별한 성질"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입니다. 학자들마다 견해는 조금씩 다르지만 모든 존재론은 결론이 "존재 때문이다."로 끝납니다. 이 "존재의 특별한 성질"이라는 것이 결과정보입니다. 그래서 결과정보의 오류가 생깁니다. 존재론 - 위키백과

존재론에서 오류가 생기는 이유는 "존재 때문이다."라고 말을 해놓고 "존재는 왜 그런가?", "어떻게 해서 그러한가?"하는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존재론은 재래식 수학의 집합론과 매커니즘이 같습니다. 문제의 가장 상위 원인을 각종 존재의 특성으로 정의하고 거기서 사고가 멈춥니다.


철학이 존재론으로 결론나면 학문의 포기가 됩니다. 그 지점부터 더 이상 연구를 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원래부터 성질이 다 정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관에서 원래부터 왕족은 왕족, 성직자는 성직자, 무사는 무사, 농노는 농노입니다. 만물은 상상속의 존재인 특정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더 이상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학자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문을 가지는 사람의 입을 틀어막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질문하는 게 아니야. 우리가 이미 안 하기로 합의를 했어.”하면서 말입니다. 학자들이 앞장서서 학문 연구를 방해하게 됩니다.


위 그림은 영화 "장미의 이름"입니다. 수도원 도서관 관리자가 금서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편을 보려고 하는 다른 수도사들을 차례대로 살해하는 내용입니다. 이러면 철학 이하에서 전개된 모든 과학분야도 전부 망하게 됩니다. 과학을 부정하는 행위가 됩니다. 학문 부정이 됩니다. 과학의 가장 근원적인 부분에서 과학을 부정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속임수가 유발됩니다.

이런 부조화와 부조리를 인지하고 폭로한 사상이 바로 실존주의입니다. 실존주의는 "관찰자인 내가 있고 그 관찰자의 주관적 관점을 잘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어떻게 하는지가 애매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조리를 폭로하기는 했는데 그 다음이 부실합니다. 실존주의 - 위키백과

방법을 찾는데 실패한 사람들이 실패의 이유를 존재의 다름이라고 결론내리는 것이 실존주의 존재론의 한계입니다. "존재의 다름을 받아들이자." 연역론에서는 그러면 뭔가요? 또다른 존재규정이 되는 것입니다. 연역론에서는 존재론을 거부합니다. 존재는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실제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과정보인 존재가 아니라 관계정보와 정보구조체입니다. 귀납적인 관점에서 결과정보를 관찰하던 사람들의 학문포기가 바로 존재론입니다. 더 이상 방법을 모르겠으니까 "원래 존재가 그런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연역론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거대한 집단이고 이 집단이 공유하는 DNA에 "우리 몸과 관련된 관계정보와 정보구조체"가 있습니다. 이제 이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해서 그 위에 우리는 소프트웨어 역할을 하는 형이상 관계정보와 정보구조체를 사용해서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한 인간에게 수십 개, 수백 개의 정보구조체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연역론의 세계관입니다. 연역론은 허상 속의 존재가 되려고 헤메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관계정보와 정보구조체를 추론하고 만드는 방법을 깨우쳐서 그것을 실천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시작하고 끝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방법은 없고 그냥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습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되지 못하면 이 열망이 좌절감으로 이어집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되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바로 열등감입니다. 그러면 자기 자신을 숨기고 싶고 다른 존재인척 하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면 방어기재가 발달합니다. 방어기재는 스트레스나 열등감을 느끼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현실을 회피하거나 외부 대상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자동반사적인 활동입니다. 방어기제 - 위키백과

다른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이 마음이 조금 더 흐르면 공상허언증이 됩니다. 자신이 다른 존재라고 상상으로 믿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만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연역론에서는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존재를 믿으면서 사람의 정신세계가 망가집니다. 정신병이 생깁니다. 종교나 명상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영적수련, 체험, 연구를 해도 존재론으로 결론이 나면 실패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종교와 명상 분야가 존재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학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재가되는 방법은 있어도 원래부터 천재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것이 연역론의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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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기준이에요.  저는 Deduction Theory, LLC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CEO로 일하고 있어요.
저는 제 동생 이기환님과 함께 일을 하구요. 연구와 공부도 하고 있어요. 우리가 연구하는 주제는 논리학, 수학, 과학, 그리고 컴퓨터 정보공학이에요. 이 블로그는 우리가 연구하고 공부하는 주제를 설명하는 곳이에요.
그리고 저는 최근 오픈소스 공개 스터디 릴랏 프로젝트의 내용을 번역해 주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어요. 제 생각에는 이 프로젝트가 전세계에 사는 어린이, 학생, 어른에게 도움이 될 거에요. 특히 저소득층에게요. 이 프로젝트는 무료에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기획했어요. 저는 나중에 저소득 국가에 학교와 고아원을 짓고 사람들에게 이 프로젝트 방식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쳐 주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나중에 그 사람들이 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돕고 싶어요.
아래에 링크한 릴랏 소개 페이지를 읽어 본 다음 이것이 도울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시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오픈소스 공개 스터디 프로젝트 Rellat을 소개합니다
원문 컨텐츠는 한글로 전부 제가 쓴 것이에요. 우리는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님과 함께 Rellat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기환입니다.
제가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 어도비 플래시 프로그램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다가 게임을 만들고 싶어서 액션스크립트를 사용한 것입니다.
Rellat 프로젝트의 방법론은 제가 평소에 일을 하는 방법과 같습니다.
저는 사실 500줄 이상 넘어가는 코드를 보면 정신이 없고 잘 기억도 안됩니다. 지금도 간단한 코드 문법이 기억이 안나서 구글을 뒤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대신 저는 이 코드가 어떤 사고방식을 사용해서 만들어졌는지, 어떤 관계정보를 사용했는지를 추적합니다. 이것이 연역론의 코딩 방법론, 코딩 스타일, 컴퓨팅 세계관입니다.
이 사고방식을 갖추면 더 나은 정보처리 방식이 무엇인지 비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프로그래밍의 본질이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나머지 프로그램의 빈공간은 구글과 스택오버플로우의 힘을 빌려서 채워넣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그렇게 하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새로운 기술, 수만 줄의 코드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면서 대규모의 질 높은 정보처리를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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